Song Si-yeol
송시열
송시열(宋時烈)
송시열은 효종대 산림으로 발탁되어 북벌과 대명의리 담론을 제시했으나 실제 정책은 왕·관료·군사 조건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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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현종대 두 차례 예송과 숙종대 환국에서 서인·노론의 핵심 논객으로 활동하며 왕통 해석과 정국 갈등에 깊이 개입했다.
- 제자·서원·문집 네트워크와 문묘 종사가 그의 주자학 해석을 조선 후기 정전으로 만들었지만 반대 당파의 비판도 지속되었다.
생애
1607
충청도 옥천 지역 가문에서 태어났다.
1630년대
김장생·김집 학맥에서 예학과 주자학을 공부하고 관직에 나아갔다.
1659
효종 사후 1차 예송에서 서인의 기년설을 이끌었다.
1689
기사환국 뒤 사약을 받아 사망했다.
1756
후대에 문묘에 종사되어 국가 유교 정전에 편입되었다.
숙종대
노년기에 사직·은퇴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출처
3곳
- 송자대전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총간 공개데이터
송자대전(宋子大全) · 한국문집총간 108~116집 · 저술·서간·비지 원문
- 송시열이 사직·은퇴를 청하다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송시열이 사직·은퇴를 청하다 · 기사 SJW-D08100200-01200 · 원문·국역
- 송시열(宋時烈)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시열(宋時烈) · E0030898 · 생애·활동·저술·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