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인지도 S
영조
Yeongjo of Joseon
이금(李昑)
1762년 아들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도록 명했고 사도세자가 사망한 임오화변은 영조 통치와 조선 왕실 기억의 핵심 비극으로 남았다. 붕당 간 인재를 고르게 기용한다는 탕평정치를 국정 원리로 내세웠으나, 그 실제 운영은 왕권 강화와 당파 통제라는 성격도 함께 지녔다.

주요 활동
이 인물을 설명하는 기록
- 1762년 아들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도록 명했고 사도세자가 사망한 임오화변은 영조 통치와 조선 왕실 기억의 핵심 비극으로 남았다.
- 붕당 간 인재를 고르게 기용한다는 탕평정치를 국정 원리로 내세웠으나, 그 실제 운영은 왕권 강화와 당파 통제라는 성격도 함께 지녔다.
- 군포 부담을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하고 절목을 반포해 군역 재정 체계를 조정했다.
- 1724년 즉위해 1776년까지 약 52년간 재위한 조선의 최장기 재위 군주로, 18세기 정치·사회 제도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생애 흐름
시간순으로 보기
- 1776
- 약 52년의 재위를 마치고 사망했다.
- 1762
-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 사망하는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 1750~1751
- 균역법을 시행하고 균역 절목을 반포했다.
- 1742
-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워 탕평의 원칙을 교육적 상징으로 제시했다.
- 1724
- 조선 제21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근거 자료
더 확인하기
- 영조실록 71권, 균역 절목을 반포하다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 27년 5월 12일 균역 절목 반포 기사
- 영조실록 71권, 균역 절목을 반포하다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 27년 균역 절목 기사
- 탕평 정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영조대 탕평책의 운영과 성격
- 영조실록 총서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총서의 사망 기록
- 탕평 정치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성균관 탕평비 관련 서술
- 영조실록 총서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총서의 즉위 기록
- 임오화변(壬午禍變)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건 전개와 역사적 의미
- 영조실록 총서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총서의 즉위·재위·사망 기록
- 사도세자의 죽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1762년 사도세자 죽음 서술
- 사도세자의 죽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1762년 사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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