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명식- 일주甲갑 · 양목午오 · 양화
- 월주壬임 · 양수午오 · 양화
- 년주乙을 · 음목亥해 · 음수
사주 풀이 예시
종합 사주
문체를 확인하는 예시예요. 이 인물의 생년월일로 작성한 풀이가 아니에요.
시작하기 전에
이유부터 묻는 편이에요.
새로운 일을 맡으면 어디에 쓰는지, 왜 이 방법으로 하는지부터 궁금해해요.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시작하면 중간에도 계속 확인하게 돼요. 처음 맡기는 사람은 질문이 많다고 느낄 수 있어요.
목적을 이해하고 나면 매번 지시를 기다리지 않아요. 빠뜨린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고, 불편한 순서는 직접 바꿔보기도 해요. 충분히 알아보고 시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이런 장점이 잘 드러나요.
다만 설명이 늘 충분할 수는 없어요. 급한 일에서는 우선 해볼 부분과 꼭 확인해야 할 부분을 나눠두면, 질문하느라 시작이 늦어지는 일을 줄일 수 있어요.
내 사주 알아보기 기록
- 1608년 즉위 뒤 전후 복구와 경기도 대동법 시행을 추진하고, 명의 원군 요구와 후금의 부상 사이에서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외교를 전개했다.
- 계축옥사와 영창대군 죽음, 인목대비 유폐, 대규모 궁궐 공사와 재정 부담은 정권의 폭력성과 반발을 키웠고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는 배경이 되었다.
생애
1592
임진왜란 발발 뒤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 활동을 시작했다.
1608
선조 사망 뒤 조선 제15대 왕으로 즉위하고 경기도에서 대동법을 시행했다.
1613~1618
계축옥사 뒤 영창대군이 죽고 인목대비가 유폐되는 정치 폭력이 이어졌다.
1619
명 요청으로 강홍립 군대를 파견했으나 사르후 전투 뒤 후금과의 전면전을 피하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1623
서인 세력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와 제주도 등지에 유배되었다.
출처
2곳
- 광해군: 격변기를 헤쳐나간 성군인가, 폐모살제의 폭군인가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대목 6곳
- 명 원군 파견과 후금 외교
- 1592년 세자 책봉과 분조
- 세자 책봉과 분조 활동
- 재위기 복구·대동법·명후금 외교
- 왕권 강화·옥사·폐모·궁궐 공사와 인조반정
- 계축옥사·영창대군·인목대비 서술
- 광해군(光海君)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목 3곳
- 1608년 즉위와 정책
- 인조반정과 폐위
- 즉위 후 대동법·복구와 대외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