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e Chi-won
최치원
최치원(崔致遠)
12세에 당으로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당 관료·문장가로 활동하며 황소의 난 관련 격문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AI 그림
기록
-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등 현존 저술·비문을 남겨 9세기 동아시아 한문학·불교사·외교사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 신라 귀국 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를 올려 골품제와 국정 혼란 속 개혁을 요구했다.
- 고려 이래 문묘·서원·사당과 교육 서술에서 문창후·고운으로 기려지며 한국 한문학과 한중 교류의 장기 기준점이 되었다.
생애
857
신라 왕경에서 태어났다고 『삼국사기』 열전이 전한다.
868
12세에 당 유학길에 올랐다.
874
당 빈공과에 급제했다.
885
신라로 귀국해 관료 생활과 문서 작성에 참여했다.
894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를 올렸다.
10세기 초 추정
말년의 정확한 행적과 사망 시점은 전하지 않는다.
출처
2곳
- 최치원: 시대를 만나지 못한 비운의 천재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대목 10곳
- 출생과 가계
- 시무십여조 제출과 신라 말 정세
- 귀국과 관직
- 입당 연대
- 후대 평가와 기념
- 계원필경과 문장가 평가
- 시무십여조
- 입당·빈공과 급제와 고변 막부 문장 활동
- 빈공과 급제
- 말년 은거와 사망 미상
- 최치원(崔致遠)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목 7곳
- 저술과 사산비명
- 고려 이후 추숭과 문화적 영향
- 귀국 뒤 개혁안
- 당 유학과 관료 경력
- 귀국 뒤 활동
- 당 유학
- 개혁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