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인지도 A

윤선도

Yun Seon-Do

윤선도(尹善道)

윤선도는 보길도를 부용동이라 이름 붙이고 세연정과 연못을 직접 조성했으며, 그 부용동 원림의 유적은 현재까지 실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윤선도는 왕권 강화를 주장하고 예론에서 서인과 맞서다가 삼수에 유배된 뒤 1667년 풀려나 부용동으로 돌아갔다.

윤선도의 AI 재구성 일러스트
실제 초상이 아닌 AI 재구성 일러스트입니다.실제 초상이 아닌 AI 재구성 일러스트입니다.상징적 AI 재구성으로, 실제 초상·닮은꼴·광고·추천 용도로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주요 활동

이 인물을 설명하는 기록

  • 윤선도는 보길도를 부용동이라 이름 붙이고 세연정과 연못을 직접 조성했으며, 그 부용동 원림의 유적은 현재까지 실제로 잘 보존되어 있다.
  • 윤선도는 왕권 강화를 주장하고 예론에서 서인과 맞서다가 삼수에 유배된 뒤 1667년 풀려나 부용동으로 돌아갔다.
  •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40수 연시조 「어부사시사」를 직접 창작했고, 이 작품군과 함께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가인으로 평가받는다.
  • 윤선도는 이이첨 등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뒤 경원과 기장에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뒤 풀려났다.

생애 흐름

시간순으로 보기

1651년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40수 연시조 「어부사시사」를 직접 창작했고, 이 작품군과 함께 정철·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가인으로 평가받는다.
1637년 이후
윤선도는 보길도를 부용동이라 이름 붙이고 세연정과 연못을 직접 조성했으며, 그 부용동 원림의 유적은 현재까지 실제로 잘 보존되어 있다.
1616~1623년
윤선도는 이이첨 등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뒤 경원과 기장에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뒤 풀려났다.
1657~1667년
윤선도는 왕권 강화를 주장하고 예론에서 서인과 맞서다가 삼수에 유배된 뒤 1667년 풀려나 부용동으로 돌아갔다.

근거 자료

더 확인하기

  1. 윤선도(尹善道)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선도(尹善道) · E0042393 · 생애 및 활동사항
  2. 윤선도 - 보길도에서 시조를 읊다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 연대기 · 조선 · 윤선도 · kc_n30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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